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을 주의 깊게 읽어본 성도라면 구약 성경에 그토록 많이 나오는 하나님의 성호 "여호와"라는 단어가 신약 성경에서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겼을 것입니다.

저 역시 이 글을 쓰기로 마음을 정하고 다시 점검하여 보았는데, 구약에서 5909번 나오는 "여호와"라는 단어가 신약에서는 마태복음에서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 것을 거듭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성도들은 목회자에서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기도 중에 "여호와 하나님"을 언급합니다. 구약의 유대인들이 감히 부르지 못하고 "아도나이"라고 대신 부르던 그 성호를 오늘의 성도들은 뭔가 더 신앙적이고 다분히 권위적인 분위기를 위하여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성호를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신앙태도는 적절한 것일까요?

저는 왜 신약 성경에 여호와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는가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고, 신약성경에 나타나지 않는 이러한 표현을, 오늘의 성도가 기도 중에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르지 않다는 것을 주장하려고 합니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와 메시아 강림의 약속이 성취된 신약에서의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는 질적으로 현격하게 다릅니다. 먼저 관계 변화의 추이를 도표로 만들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창세

      에덴 동산

       범죄 후

        하나님

       (여호와)

       창조주

      동산 주인

       심판주

         인간

       피조물

        청지기

         죄인

 

                                      그리스도 강림 후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삼위일체)

    아버지

    구속 주

     보혜사

    내주하심

      성도

     자녀

 부름받은 종

       성도

      성전

 

불신자는 여전히 심판주와 죄인의 관계

상기의 도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신 것을 기준하여 하나님과 인간에게 관계의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단순한 위치상의 전환이 아닌 현격한 질적 차이를 내포하고 있음도 생각 할 수 있습니다.

먼저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창조자인 하나님과 그 분의 기뻐하신 뜻대로 지음을 받은 피조물로서 인간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성호가 창세기 2장 4절에 처음 나오는데,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인간의 창조와 관련하여 나온다는 것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창세기 1장의 창조기사가 시간적 순서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2장의 말씀은 관계에 중점을 두고 기록됐다고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2장 4절부터는 인간을 지으시는 것에 관점을 둔 기록이며, 이 기사가 시작하면서 여호와라는 성호가 나오는 것은 신앙적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된다는 것입니다.

이해를 위하여 "여호와"의 의미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출애굽기 3장 13~15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 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즉 스스로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의미의 성호가 인간을 창조하시는 기사에서 처음 나오는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존재하시지만 인간은 스스로 존립할 수 없고 자존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의존성은 곧 인간의 본질이며 신앙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죄란 인간이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존립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부르시고자 모세를 세워 "여호와" 이심을 강조하시는 것도 하나님에 대한 의존성을 버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인간에게 의존적 존재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하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리해보면 구약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이며, 인간은 여호와 즉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을 의존하는 의존적 존재라는 것이고, 더욱이 아담이후 범죄한 (스스로 존립하고자 함) 인간은 의존성을 깨닫고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께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이점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에서는 하나님과 피조물로서 인간의 관계이며, 신앙의 유무에 관계없이 인간이 지음 받은 존재라는 점이 중요하고 강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 의존성이 실현된 성도와 하나님이라는 관계가 중요해집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신 이후에도, 그분을 구주로 믿지 않는 인간은 스스로 계신 여호와 앞에 여전히 의존 받아야하는 상태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즉 불신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여전히 "여호와" 이시라는 것입니다. 더불어 이점을 생각하면서 신약의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를 생각해야 혼란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표에 나타난 것처럼 성도에게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더 이상 여호와로 계시지 않고 성부께서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시인하는 자에게 아버지로, 성자께서는 자신을 믿는 인간의 죄를 대속하심으로 구속주가 되시며 그의 피로 속량 받은 자들은 그의 소유가 되는 종으로, 그리고 성령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녀 된 성도 안에 친히 내주하심으로 보혜사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하는 성도는 비록 그 모습이나 행위가 문제가 많아도 이미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으므로 더 이상 하나님께서 여호와로 계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의 강조점은 자녀 된 성도의 성숙입니다.(성숙에 대하여는 본인의 글 중 성숙함에 이르는 길이 있습니다)

한 가지 생각할 부분은 구약에 나오는 "여호와"는 삼위하나님의 통칭이라는 것입니다. 신학자들의 일치된 견해처럼 계시의 점진성을 이해하면서 생각해보면 구약에서는 하나님과 인간이 그 존재에 있어서 차별성이 강조되었고 ,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므로 계시가 완성된 신약에서는 성도와 하나님의 관계의 깊이가 중요하게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육체적 모습이 변화됨 없이 하나님과의 관계의 질적인 변화가 있었으나, 실상에 있어서 성도의 거듭남은 하나님의 재창조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삼위 하나님께서 성도를 대하실 때 각각 다른 역할로 나오시는 것을 살펴야 합니다. 따라서 기도 드릴 때 성부 하나님께 대하여 성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기도드리는 것이 바르며, "여호와"라는 성호를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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