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6/69~1536). 대표적인 인문주의자이자 종교개혁에도 영향을 끼친 그리스도교 사상가로 알려진 에라스무스처럼, 신학과 인문학의 두 기둥을 붙잡고서 제도와 교권에 종속된 신학 흐름을 거슬러 사유의 모험을 펼치는 연구 단체가 있다. 2018년 3월 22일 설립돼 올해 3년 차를 맞는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다.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는 성경·교회·인문학 전통을 존중하고, 신학과 인문학의 융합을 꾀하면서 교회와 사회의 쇄신을 꿈꾼다. 비제도권을 지향하는 에라스무스는 사무실이나 행정 인력 없이 연구소에 소속돼 활동하는 연구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운영된다. 연구원들 회비와 교회·단체 후원금을 운영비로 쓰는데, 현재 14명이 연구원으로 함께하고 있다.

학력이나 전공 등 특정 자격 조건에 따라 들어온 사람들은 아니다. 신학 학위자 비중이 높지만, 전공은 법학·정치학·국문학·철학 등 다양하다. 개인 연구와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독서·글쓰기·토론에 적극 참여할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연구원이 될 수 있다. 생업을 따로 갖고 연구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 느슨하게 운영되는 느낌도 없지 않지만, 학문을 향한 자발적 열의로 정기 세미나·강독회·독서회를 열어 왔다. 지난해부터는 도서출판100과 연대해 '에라스무스 총서'를 펴냈다.

최근 출간한 '에라스무스 총서' 3번째 책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교 사상가들>(도서출판100)에도 신학과 인문학을 통해 시대를 사유하려는 노력이 담겼다. 현재 학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독교 사상가 8인(신학자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스탠리 하우어워스 △로완 윌리엄스 △미로슬라브 볼프, 철학자 △찰스 테일러 △존 카푸토 △장-뤽 마리옹 △리처드 카니)을 소개하는 책이다. 생애와 사상, 학문 배경, 평가와 전망 등을 담았다.

에라스무스 연구소와 최근 출간한 책 이야기를 듣기 위해, 저자로 참여한 6인 중 최경환·윤동민·김승환 연구원을 3월 18일 서울 필동 카페바인에서 만났다. 최경환 연구원은 프리토리아대학교에서 공공신학을 연구했으며, 과학과신학의대화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김승환 연구원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공공신학과 도시신학을 연구했다. 잠실제일교회 전임 목회자로 사역하면서 연구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서강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한 윤동민 연구원은 서강대 생명문화연구소와 에라스무스에서 활동 중이다. 이들과의 대화를 문답으로 정리했다.

도서출판100에서 출간하는 '에라스무스 총서' 3권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을 쓴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연구원 3인을 만났다. 왼쪽부터 김승환·최경환·윤동민 연구원. 뉴스앤조이 김은석
도서출판100에서 출간하는 '에라스무스 총서' 3권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을 쓴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연구원 3인을 만났다. 왼쪽부터 김승환·최경환·윤동민 연구원. 뉴스앤조이 김은석

- 에라스무스는 어떤 단체인가?

최경환 / 3년 전 단체를 처음 시작할 때 품고 있던 문제의식부터 이야기해야겠다. 기존에 존재했던 연구 모임들은 철학·인문학·자연과학 등 모든 학문을 기독교 교리나 세계관으로 재단하려 했다. 가치판단 이전에 어떤 학문이든 학문으로서 존중받은 전통과 역사가 있는데, 이를 '기독교적인가' 하는 틀로만 접근했다. 어떤 학문이 기독교에 공격적인 느낌이 들면, 그걸 배제하는 방식이었다. 비판하더라도 대화 가능한 방식으로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사실 근대 학문 대부분이 기독교를 비판하면서 시작했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는 학문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따라서 인문학과 신학을 둘 다 존중하면서 대화하는 젊은 연구자들 위주의 연구 집단이 필요하다고 봤다. 에라스무스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느낀 네 명(김동규·윤동민·최경환·설요한)이 뭉쳐서 만든 것이다. 청어람ARMC를 비롯해 기독교 교양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는 있었지만, 연구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는 부족한 현실도 한몫했다.

윤동민 / 한마디로 성서·교회 전통은 귀하게 여겼지만, 역사·철학·사회과학 등의 인문·사회 전통은 존중하지 않았던 과거 연구 모형과 단절한 것이다. 인문·사회 전통과 협력하는 연구 모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에라스무스 첫 번째 수요 독서회에서 다룬 책이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복음주의의 미래>(IVP)라는 점이 공교롭다. 복음주의 후예로서, 우리는 어떠한 미래를 꿈꿔야 하는지, 한국 복음주의가 어떤 부분을 쇄신해야 할지 고민한 것이다.

이런 방향성은 '에라스무스'라는 연구소 이름과도 관련 있다. 에라스무스는 인문·사회 전통과 교회·성서 전통을 모두 존중하고 상호 교류하면서 '윈-윈'하는 방식으로 사유의 모험을 해 나간 인물이다. 우리는 각자 다양한 교파·교회·사회 전통에 있지만, 다른 전통을 존중하는 것처럼 각자의 삶을 존중한다. 존중할 때 그 안에서 빚어지는 우정이 있다. 구분 짓기로 정체성을 형성하지 않고, 우정을 통해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 에라스무스의 독특한 특징이다.

공공신학과 도시 신학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이어 가고 있는 김승환 연구원은 한 교회의 부교역자로 전임 사역을 하고 있다. 그는 이번에 출간한 책에서 스탠리 하우어워스 부분을 집필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공공신학과 도시신학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이어 가고 있는 김승환 연구원은 부교역자로 전임 사역을 하고 있다. 그는 이번에 출간한 책에서 스탠리 하우어워스 부분을 집필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김승환 / 에라스무스는 신학을 사유하면서 사회 이슈를 건드리고 대중의 목마름을 채워 주려고 노력하는 단체다. 최신 신학 흐름을 소개하고 인문학적 사유를 통해 신학의 새로운 사상을 찾고자 노력한다. 나는 박사 논문을 마친 후 새물결아카데미에서 공공신학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학술·연구·세미나 활동이 신학교 바깥에서 활발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공부한 내용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 연구원 제안을 받았을 때 함께하게 됐다.

주제와 방향에 공감했지만, 무엇보다 인간적으로 끌렸다. 연구원들에게서 학문을 향한 깊은 애정, 진실한 마음을 느꼈다. 자발적으로 회비를 내면서 세미나를 열고 있다. 정기 모임으로는, 때마다 이슈화하는 책을 다루는 수요 독서회, 한 달에 한 번씩 연구 주제를 발표하는 연구원 콜로키움이 있다. 이번에 출간한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처럼 프로젝트로 모여 특정 주제를 연구하거나 발표하는 장도 마련하고 있다.

- 신학교 바깥에 위치한 비제도권 연구 집단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김승환 / 한국의 교단 신학교에서는 최신 논의를 연구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기득권 안에서 기존 것을 가르치는 일만으로 충분하니까. 현장 목회자에게 먹히니 새로운 것을 논할 이유도 없다. 제도권에서 쓰는 글을 보면 인용 도서가 2000년 이전 자료이고, 최신이라 해도 2000년대 초반이다. 2010년 이후 최신의 신학 흐름은 그 분야 박사 학위를 받은 지 얼마 안 된 젊은 연구자들이 수혈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에라스무스가 교회와 신학교를, 개인의 삶과 사회를 연결하는 신학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최경환 / 재야 아카데미 특징은 블루 오션을 찾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재야 아카데미를 통해 한국에 엄청나게 소개된, 세계적으로 핫한 철학자 푸코·아감벤·지젝은 길 위의 철학자다. 강단 철학자가 아닌데, 대중에게 놀라운 주목을 받았다. 신학계도 비슷하다. 기후·생태·바이러스 위기나 인공지능 이슈와 발맞춰 온 현장성 있는 신학은 재야 아카데미에서 발 빠르게 연구해서 소개할 수 있다. 에라스무스는 대중에게도 주목을 받아 온 힙한 신학자 미로슬라브 볼프, 스탠리 하우어워스, 로완 윌리엄스, 제임스 스미스 등을 다뤘다.

강단에서 신학을 가르쳐 온 교수들의 전공을 보면, 대체로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나 위르겐 몰트만(Jurgen Moltmann, 1926~)에서 끝난다. 응용신학인 과정신학·생명신학을 공부한 경우도 있지만, 그마저도 최신의 흐름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최근 10~20년 사이에 신학이 엄청나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윤동민 / 제도권 신학에서는 우리 시대가 요청하는 신학적 사유와 내용이 뒷전으로 밀리기 마련이다. 이미 형성된 교리나 정리된 신학 담론을 반복하는 데 치중할 수밖에 없다. 몰트만도 잘 다루지 않는다. 보수 교단에서는 칼뱅 이후에 대해서도 별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거기서 끝난다. 교리·교회를 말하기에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니까.

우리는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사회 이슈와 함께 신학하고 사유하기를 바란다. 제도권에서 관심을 보이지 않는 그 부분을 해 보자는 것이다. 에라스무스 연구 형태의 강점은 제도권과 연결돼 있지 않은 데 있다. 얽매이지 않으니까 독립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

박사 학위논문을 준비 중인 윤동민 연구원은 시대와 호흡하면서 사유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철학자 존 카푸토의 사상을 주력해서 연구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박사 학위논문을 준비 중인 윤동민 연구원은 시대와 호흡하면서 사유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철학자 존 카푸토의 사상을 주력해서 연구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 한국 사회에서 비제도권 연구원으로서 연구 활동을 하며 살아가는 일이 녹록지 않을 것 같은데.

김승환 / 나는 전임 목회 사역과 연구 활동을 병행하는 중이다. 책에 집중하거나 연구물을 내는 게 쉽지 않아 아쉽지만, 가정이 있으니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국가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연구교수 지원 제도를 이용하고 싶지는 않다. 시간을 오래 들여 깊은 논문을 하나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다. 원치 않아도 단기에 성과가 나오는 연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타협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타협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학문적 열정·방향을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 갈 것인지를 놓고 계속 고민하는 일이라고 본다.

윤동민 / 연구자로 산다는 것은 제도권·비제도권 할 것 없이 녹록지 않을 것 같다. 한국 사회는 연구원들이 안정적으로 연구하기에 척박한 환경이다. 연구가 제일 힘들다. 제도권에서 연구자로서 자기 정체성을 갖는 일이 더 쉽지 않을 수 있다. 자기가 원치 않는 연구나 일도 해야 하니까. 그러다 보면 진짜 하고 싶은 자기 연구를 못 한다. 반면, 우리는 다른 일도 하고 육아하고 난 후에야 책을 읽으니 지쳐서 어려운 면도 있다.

최경환 / 대학에서 연구 활동을 하더라도 5년 후, 10년 후 미래는 보장되지 않는다. 교수·학생 수도 줄고 있다. 강사법도 바뀌면서 학위를 받은 후 삶이 더 불투명하다. 우리 셋은 '육아'라는 공통점이 있다. 생계비를 벌고 아이들도 키워야 한다. 교수가 되지 않는 이상 제도권 연구자로서는 안정적인 직장 생활이 어려우니, 다른 일을 하면서 비제도권 연구자로서 연구한다.

밴드 하는 사람들이 아르바이트하고 난 뒤 저녁에 연습하는 것처럼, 퇴근 후 저녁에 육아하고 취미 생활로 연구하고 있다. 이 패턴이 많은 연구자의 일상이 될 것이라고 본다. 그래야 하고 싶은 분야를 마음대로 공부할 수 있다. 어떤 연구자는 대학 강의에 일부러 안 나가기도 한다. 자기 전공과 관계없이 '사고와표현' 같은 글쓰기 강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학과신학의대화 사무국장이기도 한 최경환 연구원은  생업을 따로 갖고서 취미 생활로 연구 활동을 수행하는 것이 앞으로 많은 연구자의 일상이 되리라고 전망했다. 그는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에서 미로슬라브 볼프 부분을 썼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과학과신학의대화 사무국장이기도 한 최경환 연구원은 생업을 따로 갖고서 취미 생활로 연구 활동을 수행하는 것이 앞으로 많은 연구자의 일상이 되리라고 전망했다. 그는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에서 미로슬라브 볼프 부분을 썼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 힘든 상황에서도 연구 활동을 계속하는 것은 신학과 인문학이 우리 삶에 기여하는 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신학적·인문학적 사유가 필요한 까닭은 무엇인가.

김승환 / 50대 이상 교인들을 만나 보면 사회와 성경, 교회를 보는 눈이 매우 보수적이다. 기존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죄악시하고 어려워한다. 참 안타깝다. 인문학을 통하면 신학적으로 다른 상상이 가능하다. 조금 더 유연하게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 신천지의 베이스가 한국교회의 문자주의라고 지적하는 글을 봤다. 문자주의를 깨뜨리는 작업에도 기여할 것이라 본다. 이 같은 사유에 주목하지 않으면 교회의 생존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다.

윤동민 / 신학적 측면에서 말하면, 우리는 이미 어떤 형태로든 신학적으로 사유하고 있고 그 사유가 우리 삶과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번 코로나19를 '하나님의 심판'이라 설교하는 목회자들이 있지 않았나. 설교를 들은 대다수 교인이 신학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세계 인식이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이들과 마주할 때 균열을 일으키고, 교회 바깥에서 전혀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새로운 신학적 사유를 요청받게 된다.

그러면 신학적으로 다르게 사유하는 방도를 찾아야 할 텐데, 비슷한 부분을 고민해 온 신학·사회 전통이 존재한다. 우리는 자료를 통해 다양한 상황에서 앞선 세대가 고민한 흔적과 방도를 찾을 수 있다. 기존의 삶을 그대로 산다면 그런 사유가 필요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지하고 일관되게 살려면 신학적·인문학적 사유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부터 도서출판100에서 출간한 '에라스무스 총서' 3권. 사진 제공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지난해부터 도서출판100에서 출간한 '에라스무스 총서' 3권. 사진 제공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 얼마 전 에라스무스 총서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을 출간했다. 사상가 8명을 다뤘는데, 이들을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교 사상가들'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최경환 / 이 책에 담긴 글들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세속화 시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신을 발견할 수 있는가'로 모아지는 것 같다. 근대화 이후 신앙은 사적 영역으로 후퇴해 버렸다. 공적 영역에는 합리성과 세속 이성이 자리를 잡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학은 필요하고, 이 무신론적 세계에서 신앙이 어떤 방식으로든 가능하다고 말해야 한다.

기독교 사상가들에게 주어지는 부담이 크다. '어떻게 가능하지?' 싶은 것이다. 세속 철학자·역사학자·사회학자와 말이 되게끔 논쟁할 수 있어야 하니까. 동시에 자기 신앙의 필요성도 변증해야 한다. 이 책은 그런 것을 나름대로 고민해서 자기 방식대로 표현한 사상가들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은 사회와 소통할 때 접촉점이 될 신학 개념을 잘 다듬었다. 이들 사상은 세속 사회에서 통용 가능한 △신비 △자기 내어 줌 △약함 △환대 등의 키워드로 표현된다.

김승환 / 우리는 종교가 공적 역할을 요구받는 후기 세속 사회를 살고 있다. 공적 영역에서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 한국교회를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과 자극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폭넓은 차원을 경험하게 할 학문적 틀이 있어야 하기에, 시민과 기독교를 연결해 온 사상가들의 선례를 알아야 한다. 8명 모두 후기 세속 시대에 발생하는 고민을 신학적으로 사유해 왔다. 한국교회와 사회에 유효한 사유이기 때문에 대중을 위한 가이드로서 이 책을 내게 됐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고민을 통해 이들의 사유가 나왔는지 소개될 필요가 있다.

윤동민 / 이제는 '신학 따로, 철학 따로'라는 근대적 도식을 그대로 차용하지 않고, 둘 사이의 경계선을 넘어 사유해야 하는 시대다. 우리가 다룬 사상가들은 특별히 이와 같은 '우리 시대'라는 독특한 시대적 상황에 맞는 사유를 대표적으로 보여 주는 인물들이다. 각 글의 결론에서 왜 그 인물을 소개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품게 되는 고민이 있을 텐데, 그 고민에 나름대로 제안할 수 있는 사상가들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시대 신학적 사유의 지형도도 조금이나마 그려 볼 수 있다.

- 한국 상황에서 이 사상가들이 어떤 고민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는지, 각자가 맡아서 집필했던 사상가의 사례를 들어 소개해 달라.

김승환 / 하우어워스는 제도권 신학자이지만, 메노나이트 신학자 존 하워드 요더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 기독교공동체주의자로 분류된다. 사회참여를 강조하더라도 교회적 방법을 동원한다. 공동체성을 강화하고, 교회의 존재 됨, 기독교 내러티브, 덕스러움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교회를 통해 하나님나라 비폭력 평화주의를 구현하려 한다. 수도원이나 공동체 사역을 시도하는 곳들과 연결된다. 국내에는 메노나이트 교단을 비롯해 평화 교회를 지향하는 몇몇 교회가 하고 있다. 기성 교단과는 조금 다른 제도·정치를 통해 변혁적 사역을 시도하고 있다.

최경환 / 인문학과 신학을 넘나들며 기독교 사상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 준 볼프는 기독교가 자기 정체성을 확실하게 붙잡으면서도 공적 영역에서 신뢰할 만한 가치들을 어떻게 선포할 수 있는지 보여 준다. 볼프는 '자기 내어 줌과 타자 받아들임'이 삼위일체 신학의 중요한 내용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세속 사회에서 타자들과 공존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근원적 삶의 태도라고 강조한다. 기독교가 본연의 가치에 충실하다면 공적 영역에서도 충분히 사람들에게 매력을 끌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치고 평가받는지를 생각하면 볼프의 제안은 딴 나라 이야기 같기도 하다. 한국교회가 목숨처럼 붙들고 있는 기독교 신학의 내용은 무엇인가. 희생과 섬김인가, 아니면 교회 성장과 동성애 반대인가.

윤동민 / 존 카푸토가 주저 중 하나인 <신의 약함: 사건의 신학> 집필을 마무리할 때, 우리에게 쓰나미로 잘 알려진 2004년 남아시아 대지진이 발생한다. 그는 이 재해를 이해할 수 없는 신의 섭리나 처벌, 계도와 같은 것으로 사유하는 그리스도교 반응에 좌절하고 고민한다. 그는 이러한 사유 근간에 하나님을 힘의 표상으로 사유하여 강함을 숭상하는 습관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러한 습관은 무고한 이들의 고통과 아픔이라는 지독한 현실들 가운데에서 파산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부터 어떻게 하나님을 사유할 것인가. 이것이 카푸토의 고민이다.

이러한 카푸토의 고민은 오늘날 코로나19 상황 속 우리의 고민과 공명하지 않는가? 특별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끊임없이 고민하되, '내부자들을 만들고 그들과 안전한 탑을 쌓는 것'이 아닌 다른 선택지를 찾고자 하는 이들과 말이다. 카푸토가 오래 고민하면서 대안으로 제시한 하나님을 '약함'으로 사유하는 것은 이런 점에서 오늘 우리가 고민해 볼 만한 하나의 선택지이다.

올해 3년 차를 맞은 에라스무스는 비제도권 연구소로서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시대를 인문학적·신학적으로 사유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연구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올해 3년 차를 맞은 에라스무스는 비제도권 연구소로서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시대를 인문학적·신학적으로 사유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연구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겠나.

윤동민 / '시작의 책'으로 활용하면 좋겠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시대를 신학적으로 사유하는 시작의 책이 됐으면 한다. 읽고 난 후에, 각자에게서 후속 작업이 시작되길 바란다. 기존의 교리, 생활 방식, 신앙과 삶을 반복하는 것을 넘어 새롭게 고민하고 사유하게 만드는 발판이 되면 좋겠다. 이 책을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은 두 권 사는 것이다.(웃음) 한 권은 자기가 갖고, 다른 한 권은 옆에 있는 사람에게 주면서 같이 사유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지 않을까.

김승환 / 영적·학문적으로 갈급한 마음이 있어 식당에 갔다. 메뉴가 8개다. 8개 중 유독 맛있게 다가오는 음식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한 메뉴를 계속 먹어서 한 사상가를 사랑하고 그가 전하는 개념을 이해하면서 우리 시대 문제들에 대한 탈출구·해방구로 삼을 수 있으면 좋겠다. 각자 현장에 맞는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

최경환 / 보통 책을 만들 때 제목에 신경을 많이 쓴다. 책을 받고서 각 학자를 다룬 글의 제목과 소제목을 봤는데, 아주 좋았다. 제목에 나온 개념들이 우리 시대 신학의 대표 키워드가 될 수 있다. 제목을 통해 우리 시대 신학의 그림을 상상할 수 있다. 이 책이 8인의 그리스도교 사상가들 동향을 소개하는 소식지로 활용되면 좋겠다.

이런 책이 많이 기획돼서 그리스도인들 사유의 폭을 넓히는 계기로 작용하길 바란다. 하이데거 권위자 신상희 박사가, 자신이 유학하기 전 하이데거 책들이 번역돼 있었다면 독일 유학 10년을 반으로 줄일 수 있었다고 말한 적 있다. 학문에는 디딤돌이 필요하다. 번역서나 소개서라도 있으면 그것을 디딤돌 삼아 더 깊은 연구에 들어갈 수 있다. 부족한 점이 있겠지만, 이 책이 징검다리가 되어 누군가의 공부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으면 한다.

청어람ARMC에서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교 사상가들>(도서출판100)로 에라스무스와 '공동 북 토크' 및 '온라인 정기 강좌'를 연다.

공동 북 토크 '현대 그리스도교 사상의 지형도'는 4월 3일 금요일 오후 7시, 청어람 페이스북과 유튜브 공개 라이브로 진행된다. 이 책 저자로 참여해 장-뤽 마리옹과 리처드 카니에 대해 쓴 김동규 에라스무스 운영위원과 미로슬라브 볼프 부분을 쓴 최경환 에라스무스 연구원이 민경찬 비아 편집장, 박현철 청어람 연구원과 함께 책을 둘러싼 다양한 맥락을 살핀다. 책의 의미와 구성, 작업 과정, 장단점 등을 두고 이야기 나눌 예정이다. 참가비는 무료다.

(신청 페이지 바로 가기: https://ichungeoram.com/lectures/131)

온라인 정기 강좌는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에 등장하는 사상가 중 6인을 다룬다. 4월 9일부터 5월 14일까지 매주 목요일 오전 11시 한 강좌씩 공개된다. 강좌는 책 저자로 참여한 에라스무스 소속 연구원들이 맡았다. 김승환 연구원이 '스탠리 하우어워스'(4/9)를, 최경환 연구원이 '미로슬라브 볼프'(4/16)를, 손민석 연구원이 '찰스 테일러'(4/23)를, 윤동민 연구원이 '존 카푸토'(4/30)를, 김동규 운영위원이 '장-뤽 마리옹'(5/7)과 '리처드 카니'(5/14)를 살펴볼 예정이다. 강좌는 수강 신청을 하는 날부터 6개월간 볼 수 있다. 수강료는 6만 원이다.

(신청 페이지 바로 가기: https://ichungeoram.com/lectures/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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