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없어요?"
"미안해요. 이제 없어요. 다 떨어졌어요. 다음 주에 더 많이 가지고 또 올게요."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고경수 목사(대구이주민선교센터)가 아쉬워하는 이주 노동자 손에 손 소독제 한 병을 쥐여 주며 말했다. 모자를 푹 눌러쓴 또 다른 노동자도 와서 자신의 입을 가리키며 서툰 한국말로 물었다. "마스크?" 그는 보푸라기가 하얗게 인 하늘색 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고 목사는 늦게 찾아온 이들에게 미안했는지 손 소독제나 라면·쌀 등을 대신 들려 보냈다.

대구이주민선교센터 고경수 목사와 김해용 사무국장, 베트남인 쩐티빅한 간사는 3월 14일, 대구 시내에서 약 28km 떨어진 달성1차일반산업단지(달성공단)를 찾았다. 이 공단에는 주로 자동차 부품 하청 업체들이 들어서 있다. 공장 노동자 대부분이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주 노동자다. 세 사람은 노동자들이 퇴근 버스에서 하차하는 시가지에 임시 테이블을 설치했다. 서울·광주·대구 등 전국 각지에서 보내 준 면 마스크, 손 소독제, 쌀, 라면, 누룽지 등을 쌓아 놓고 이주 노동자들을 맞았다. 노동자들은 담벼락을 따라 줄을 길게 섰다.

마스크를 받기 위해 모인 이주 노동자들이 여러 갈래로 줄을 섰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마스크를 받기 위해 모인 이주 노동자들이 여러 갈래로 줄을 섰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주 노동자들에게 마스크는 귀하다. 단지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 상당수가 미등록자이기 때문이다. 공적 마스크를 살 자격이 안 된다. 외국인 등록증과 건강보험증이 있어서 자격이 되는 노동자들도, 날짜에 맞춰 약국을 찾아 마스크를 구매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퇴근을 반복하는 이들이 마스크를 사기 위해 일과 시간을 이용해 공장을 이탈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공장에서는 마스크를 꼭 착용해야 한다. 한국에 온 지 5년째라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A는 "출근할 때 열을 잰다. 마스크도 꼭 써야 한다. 그런데 공장에서는 마스크를 나눠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태국인 B가 일하는 공장은 일회용 마스크를 3일에 1개 지급한다고 했다.

대구이주민선교센터는 매일 공장에 출근해야 하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나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대구이주민선교센터는 매일 공장에 출근해야 하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나눠 줬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대구이주민선교센터는 이날 노동자들에게 손 소독제, 면 마스크, 일회용 마스크를 하나씩 나눠 줬다. 일렬로 선 사람들이 끝 모르게 이어졌다. 센터가 준비한 마스크 400장은 20분도 안 돼 동이 났다.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던 많은 사람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고경수 목사도 마스크를 받지 못한 채 돌아가는 노동자들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주 노동자들도 코로나19가 불안한 건 마찬가지다. 한국어가 서툴러 출신국 커뮤니티에서 오가는 말들로 소식을 접한다. 초기에는 불안함을 내비쳤지만 꽤 차분하게 지금까지 개인 생활 수칙을 잘 따라 줬다"고 말했다.

대구이주민선교센터는 평소 임금 체불, 산재 등 노동문제를 상담하거나 이주민에게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등 사역을 이어 왔다. 나라별로 예배 공동체를 꾸리고, 선교에 뜻있는 이주 노동자를 교육해 역으로 파송하기도 했다. 지금처럼 직접 나서서 물건을 전달하는 방식의 활동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 이들에게 제일 필요한 게 마스크이기 때문에 후원 물품이 도착하는 대로 공단을 찾는다. 우리는 대구시외국인주민지원센터로 등록이 돼 있다. 정부에서 직접 빈 곳을 메우기 힘들면 차라리 우리를 이용해 달라고 건의했는데 (공무원들이) 아직 거기까지 돌아볼 여력이 안 되는 것 같다."

고경수 목사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에게 현재 가장 필요한 건 마스크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고경수 목사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에게 현재 가장 필요한 건 마스크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고경수 목사는 혹시라도 미등록 이주 노동자 중에 확진자가 발생할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예멘 난민이 제주도에 들어왔을 때처럼 혐오와 낙인찍기가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 목사는 "지금도 미등록 체류 노동자들의 인권유린이 심한 상황인데, 만약 확진자라도 나오면 언론이고 뭐고 가만두지 않을 것이고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경수 목사는 하루빨리 정부 차원에서 이와 관련한 대책을 세우면 좋겠다고 했다. 복지에서 소외된 이주 노동자들이 실제로 혜택을 받기 전까지는 매주 토요일 공단을 찾아 마스크를 나눠 줄 것이라고 말했다.

감염병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할 수 없는 노동환경에 놓인 이들에게 더 빨리, 많이 찾아간다.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이주 노동자들에게 마스크를 전달하고 싶다면 대구이주민선교센터(053-636-4171)나 고경수 목사(010-9332-1205)에게 연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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