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6월 30일 '평등 및 차별 금지에 관한 법률' 입법을 조속히 추진하라며 국회에 의견 표명을 했다. 인귄위의 차별 금지 관련 법률 제정 권고는 2006년 이후 14년 만이다. 사진 출처 국가인권위원회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6월 30일 '평등 및 차별 금지에 관한 법률' 입법을 조속히 추진하라며 국회에 의견 표명을 했다. 인귄위의 차별 금지 관련 법률 제정 권고는 2006년 이후 14년 만이다. 사진 출처 국가인권위원회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최영애 위원장)가 국회에 "평등 및 차별 금지에 관한 법률(평등법) 입법을 조속히 추진하라"는 의견을 표명했다. 인권위는 6월 30일 전원위원회 후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 대표이자 입법권자인 국회가 평등법 제정에 온 힘을 쏟아 달라"고 요청했다.

인권위의 평등법 제정 의견 표명은, 2006년 국무총리에게 차별금지법 입법 추진을 권고한 이후 14년 만이다. 2020년 내 법 제정을 목표로 내걸었다. 인권위는 올해 상반기 동안 쟁점 검토 및 전문가 자문, 시민사회 의견 수렴 등을 거쳐 법 시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최영애 위원장은 "평등법 제정은 이제 더 미룰 수 없는 우리 사회 당면 과제다. 인류가 이미 70년 전 세계인권선언에서 확인했듯이, 어떠한 이유로도 인간의 존엄성을 유보할 수는 없다. 인권위는 이번에야말로 '모두를 위한 평등'이라는 목표를 향해, 평등법 제정이라는 결실을 볼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이날 국회에 보낼 평등법 시안도 함께 공개했다. 2006년 차별금지법 권고 법안을 기준 삼아 미흡한 내용을 보완했다. 충분히 드러나지 않거나 미처 발견하지 못한 차별 문제, 변화한 사회 현실과 인식 등도 반영했다고 언급했다.

"공론장 왜곡하는 혐오 표현도 제재해야"
고용·교육·서비스 분야에서
불합리한 차별 금지

인권위는 이번 평등법 시안을 공개하면서 차별에 '성희롱'을 포함하고, 괴롭힘 유형에 '혐오 표현'을 추가하는 등 차별 개념을 명확히 정리했다고 설명했다. 시안은 △차별 개념과 범위 명확화 △국가 및 지자체의 차별 시정 책무 규정 △규율되는 차별 유형 구체화 △차별 구제 수단 다양화와 구제 실효성 제고를 골자로 한다. 차별은 ①직접 차별 ②간접 차별 ③괴롭힘 ④성희롱 ⑤차별 표시·조장 광고 행위 총 5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괴롭힘'은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적대적·위협적 또는 모욕적 환경을 조성하거나 △수치심·모욕감·두려움 등을 야기하거나 △멸시·모욕·위협 등 부정적 관념의 표시·선동 등의 혐오적 표현을 해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로 정의했다.

인권위는 '혐오 표현'을 추가한 데 대해 "차별 대상이 되는 존엄성을 침해하고 공론의 장을 왜곡하며, 그 결과 혐오 표현 대상 집단에 대한 차별을 고착하고 불평등 효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시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단순히 혐오 표현을 했다고 해서 모두 법 적용 대상이 되지는 않고, 누군가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괴롭힘을 입혔다는 점이 증명될 때만 적용된다.

차별에 대한 제재는 크게 고용, 교육기관의 교육·훈련, 재화와 용역의 공급 또는 이용, 행정·사법 서비스 제공 분야에 적용된다. 사업주는 개인의 신체 조건이나 성 정체성, 출신 지역, 인종 등을 이유로 불합리하게 채용을 거절하거나 연봉을 부당하게 책정하면 안 된다. 교육기관은 이를 이유로 지원·입학을 제한하거나 퇴학 등을 강요해서는 안 되며,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나 편견을 교육하면 안 된다. 또 누구든 불합리한 이유로 보험 가입이나 신용카드 발급, 대출 등 금융 서비스나 보건 의료 서비스, 방송, 교통 등에서 차별하면 안 된다. 공공서비스 부문도 마찬가지다.

만일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면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다. 법원은 차별로 인한 손해가 입증됐을 때 손해배상을 하도록 명할 수 있으며, 손해액의 3~5배 사이(최소 500만 원 이상)에서 액수를 정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차별의 고의성·지속성·반복성·보복성과 차별 내용 및 규모를 고려한다.

"법 제정되면 잡혀간다" 주장하는 보수 개신교
인권위 "처벌 조항, 신고자·제보자에
불이익 가했을 때만 해당, 설교·전도와 무관"
인권위는 올해 상반기 전문가 회의 및 시민사회 의견 수렴을 거쳐 평등법 시안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또 보수 개신교계 의견을 계속해서 수렴하겠다고도 했다. 사진은 지난달 최영애 위원장이 한국교회총연합을 방문한 모습. 사진 출처 소강석 목사 페이스북
인권위는 올해 상반기 전문가 회의 및 시민사회 의견 수렴을 거쳐 평등법 시안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또 보수 개신교계 의견을 계속해서 수렴하겠다고도 했다. 사진은 지난달 최영애 위원장이 한국교회총연합을 방문한 모습. 사진 출처 소강석 목사 페이스북

인권위 평등법 시안과 전날 장혜영 의원(정의당) 등 10명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은 입법 취지를 비롯해 정부의 차별 시정 기본 계획 수립 의무, 피해자 구제 절차, 손해배상 및 불이익 조치 가해자 처벌 등 골격이 유사하다. 차별 범위, 차별 대상 행위 기준 등 구체적 내용은 다소 차이가 있다.

장혜영 의원 안은 역대 진보 정당 의원들이 주도한 법안 내용을 이어받아 "근로계약상 개인의 조건을 이유로 한 차별적 부분은 무효로 본다"(11조 1항) 등 노동 관련 조항을 구체적으로 넣었고, 성적 지향에 대한 정의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인권위 시안은 피해자 구제를 위한 소송 지원 변호인단을 구성할 수 있고, 소송비용 등을 국가가 부담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두 법안 모두 보수 개신교계가 우려하는 '설교나 전도 등 종교 기관에서의 행위·발언'을 처벌하는 조항은 없다. 인권위 시안에서 '종교'라는 단어는 단 1회 등장하고, 장혜영 의원 안에서는 총 4회 등장하는데, 모두 인종·성별·외모 등과 나란히 등장해 '보호받아야 할 개인의 신념' 차원에서 쓰인다.

인권위는 30일 별도 Q&A 설명 자료를 내고 보수 교계의 오해에 적극 해명했다. 대표적 왜곡 주장 "차별금지법 통과되면 설교·전도 못 하고 목사는 잡혀간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인권위는 "종교계 일부가 제기하는 주장은 평등법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용, 재화·용역 등 일부 영역에 적용되고 설교나 전도 그 자체는 평등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차별금지법(평등법)은 동성애 옹호법"이라는 주장에 대해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과 같은 성소수자 정체성과 관련된 사유만이 아니라, 장애·나이·인종·종교·학력 등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차별 사유를 포괄하는 법률이다"고 설명했다. 또 "생물학적 성별과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의 동등한 주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지, 일각의 주장처럼 특정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장려하는 법률이 아니다"고 했다.

평등법 시안에도 차별 행위와 관련한 형사처벌 규정이 없다. 차별이 발생했을 경우 고용주나 교육기관 등을 대상으로 인권위가 시정 권고를 할 수 있고, 법원이 임시 조치 명령이나 손해배상 판결을 할 수는 있다.

이번 인권위 시안이나 장혜영 의원 안뿐 아니라 역대 제출된 차별금지법안을 전부 살펴봐도, 처벌은 피해자에게 보복 조치(불이익 조치)를 가했을 경우에만 적용된다. 어디에도 '동성애는 죄'라는 발언 자체로 처벌하려는 시도는 없다. 불이익 조치에 따른 형량도 2007년 법무부 안부터 2013년 최원식 의원 안까지 모두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었다. 도리어 장혜영 의원 안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벌칙이 약해졌다. 인권위가 내놓은 평등법 시안만 이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강화했을 뿐이다.

반동성애 진영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애 독재'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인권위는 평등법은 동성애를 조장하는 법이 아니며, 다양한 차별을 포괄적으로 막기 위한 법이라고 재삼 설명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반동성애 진영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애 독재'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인권위는 평등법은 동성애를 조장하는 법이 아니며, 다양한 차별을 포괄적으로 막기 위한 법이라고 재삼 설명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21대 국회의원들 법안 발의에 이어 인권위가 차별금지법에 준하는 평등법 제정을 권고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6월 30일 장혜영 의원 법안을 국회운영위원회를 비롯한 관련 상임위원회에 회부했다.

인권위의 평등법 제정 의견 표명도 국회에 접수되면 관련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인권위는 "국회에서 깊이 있는 검토와 의견 수렴을 거쳐 법률을 제정할 것을 기대하며, 국회에서 입법 발의가 되면 국회 차원의 입법 예고나 공청회 등 의견 수렴 절차 때 국민 의견이 국회에 잘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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