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월이 돌아오면

오월이 돌아오면
내게서는 제법 식물 내음새가 난다

그대로 흙에다 내버리면
푸른 싹이 사지에서 금시 돋을 법도 하구나

오월이 돌아오면
제발 식물성으로 변질을 하여라

아무리 그늘이 음산하여도
모가지서부터 푸른 싹은 밝은 방향으로 햇볕을 찾으리라

오월이 돌아오면
혈맥은 그대로 푸른 엽맥(葉脈)이 되어라

심장에는 흥건한 엽록소(葉綠素)를 지니고
하늘을 우러러 한 그루 푸른 나무로 하고 살자

(신석정·시인, 1907~1974, 1939년 작품)

+ 五月

5월의 나무들 날 보고
멀리서부터 우쭐대며 다가온다

언덕 위 키 큰 소나무 몇 그루
흰 구름 한두 오락씩 목에 걸은 채
신 나게 신 나게 달려온다

학들은 하늘 높이 구름 위를 날고
햇살은 강물 위에 금가루를 뿌리고

땅 위에 가득 찬 5월은 내 것
부귀도 仙鄕도 부럽지 않으이.

(김동리·소설가, 1913~1995) / <문학사상> 1998년 7월호에 공개된 미발표 유작시

+ 감나무 있는 동네

어머니,
오월이 왔어요
집마다 감나무 서 있는
고향 같은 동네에서
살아갑시다

연둣빛 잎사귀
눈부신 뜰마다
햇빛이 샘물처럼
고여 넘치면

철쭉꽃 지는 언덕
진종일 뻐꾸기 소리
들려오고

마을 한쪽 조그만 초가
먼 하늘 바라뵈는 우리 집
뜰에 앉아

어디서 풍겨 오는
찔레꽃 향기 마시며
어머니는 나물을 다듬고
나는 앞밭에서 김을 매다가
돌아와 흰 염소의 젖을
짜겠습니다

그러면 다시
짙푸른 그늘에서 땀을 닦고
싱싱한 열매를 쳐다보며 살아갈
세월이 우리를 기다리고,

가지마다 주홍빛으로 물든 감들이
들려줄 먼 날의 이야기와
단풍 든 잎을 주우며, 그 아름다운 잎을 주우며
불러야 할 노래가 저 푸른 하늘에
남아 있을 것을
어머니, 아직은 잊어버려도 즐겁습니다

오월이 왔어요
집마다 감나무 서 있는
고향 같은 동네에서
살아갑시다, 어머니!

(이오덕·아동문학가, 1925~2003)

+ 오월의 신록

오월의 신록은 너무 신선하다.
녹색은 눈에도 좋고
상쾌하다.

젊은 날이 새롭다
육십 두 살 된 나는
그래도 신록이 좋다.
가슴에 활기를 주기 때문이다.

나는 늙었지만
신록은 청춘이다.
청춘의 특권을 마음껏 발휘하라.

(천상병·시인, 1930~1993)

+ 고귀한 자연

보다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나무가 크게만 자라는 것과 다르다.
참나무가 삼백 년 동안이나 오래 서 있다가
결국 잎도 피우지 못하고 통나무로 쓰러지느니
하루만 피었다 지는
오월의 백합이 훨씬 더 아름답다.
비록 밤새 시들어 죽는다 해도
그것은 빛의 화초요 꽃이었으니.
작으면 작은 대로의 아름다움을 보면
조금씩이라도 인생은 완벽해지지 않을까.

(벤 존슨·영국 시인이며 극작가, 1573~1637)

+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모든 꽃봉오리 벌어질 때
나의 마음속에서도
사랑의 꽃이 피었어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모든 새들 노래할 때
나의 불타는 마음을
사랑하는 이에게 고백했어라.

(하인리히 하이네·독일 시인, 1797~1856)

+ 5월의 노래

오오 찬란하다
자연의 빛
해는 빛나고
들은 웃는다
나뭇가지마다
꽃은 피어나고
떨기 속에서는
새의 지저귐

넘쳐 터지는
가슴의 기쁨
대지여 태양이여
행복이여 환희여

사랑이여 사랑이여
저 산과 산에 걸린
아침 구름과 같은
금빛 아름다움

그 기막힌 은혜는
신선한 들에
꽃 위에 넘친다.
한가로운 땅에

소녀여 소녀여
나는 너를 사랑한다
오오 반짝이는 네 눈
나는 너를 사랑한다

종달새가
노래와 산들바람을 사랑하고
아침의 꽃이
공기의 향기를 사랑하듯이

뜨거운 피 설레며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내게 청춘과
기쁨과 용기를 부어라

새로운 노래와
댄스로 나를 몰고 간다
그대여 영원히 행복하여라

(괴테·독일 시인, 1749~1832)

+ 5월의 바람

열린 문 굳게 잠그듯
내 가슴의 문 굳게 닫았네
그 안에서 굶주린 사랑
이제 더 성가시게 하지 않도록

머지않아 저 지붕 너머에서
5월의 따스한 바람 불어오면
거리에 울리던 피아노 소리도
철책 너머로 울려 퍼지리

내 방엔 해 비쳐 더욱 밝은데
사랑은 내 안에서 소리 지르네
"난 아직 튼튼해, 놓아주지 않으면
그대의 가슴 쳐부수고 말테야."

(세라 티즈데일·미국 시인, 1884~1933)

엮은이 :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