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과 차별금지법④] 정의당 이주민인권특별위원회 이자스민 위원장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이자스민 전 의원만큼 차별을 겪은 국회의원이 또 있을까. 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의원이었던 그는 온갖 가짜 뉴스와 악플에 시달렸다. 대중의 관심사는 그가 국회의원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가 아니었다. '필리핀 출신'이라는 딱지가 이자스민 전 의원의 모든 활동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이자스민 전 의원은 올해 21대 총선을 앞두고 정의당에 입당했다.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으나 당선은 되지 못했다. 이때도 그를 향한 근거 없는 인종차별 발언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진보 진영에서도 그의 새누리당 당적을 트집 잡으며 비난했다. 4년 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현실적으로 국회의원이면 '갑' 중에서도 '슈퍼 갑'이다. 하지만 슈퍼 갑도 인종차별 앞에서는 '슈퍼 을'이 됐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정의당 이주민인권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당의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이유다.

누구보다도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차별금지법과 관련한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는 단번에 'OK'했다. 요즘도 정당 일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는 그를 9월 10일 서울 연희동에서 만났다. 자연스럽게 최근 필리핀에서 불고 있는 '캔슬코리아'(#cancelKorea), 반한反韓 운동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일부 한국 네티즌은 필리핀인 인플루언서(influencer) 벨라 포치의 문신이 욱일기를 연상시킨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포치가 몰랐다며 사과까지 했는데도, 한국 사람들은 공격을 멈추지 않고 필리핀인을 비하하는 인종차별 발언을 댓글로 쏟아부었다. 이에 필리핀인들이 '캔슬코리아'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게시물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정의당 이주민인권특별위원회 이자스민 위원장을 9월 10일 서울 연희동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마스크를 쓴 채 진행했지만, 사진 찍을 때는 잠깐 벗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정의당 이주민인권특별위원회 이자스민 위원장을 9월 10일 서울 연희동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마스크를 쓴 채 진행했지만, 사진 찍을 때는 잠깐 벗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자스민 위원장은 국회의원으로 재직할 때 받은 대부분의 악플과 비난이 이 같은 인종주의에 근거한 것이었다고 했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발언이 차별인지 아닌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같은 일이 반복된다고 봤다. 그는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차분하게 논의를 시작해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같은 국회의원이라도 이주민은 '을'
하는 일로 평가하지 않고
무조건적 비난과 악플 세례
"차별금지법 필요성 절감"

- 캔슬코리아 운동을 보며 과거 받은 악플이 많이 떠올랐을 것 같다.

비슷한 일을 정말 많이 당했다. 나를 향한 제일 말도 안 되는 비난은, 2013년 필리핀 태풍 피해 지원 결의안과 관련해서 나왔다. 그때 슈퍼 태풍 하이옌이 필리핀 타클로반 지역을 강타해 피해가 극심했다. 인도적 차원에서 한국이 복구를 지원하자는 결의안을 제출했다. 내가 원해서 낸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내 모국이었기 때문에 괜한 논란을 만들고 싶지 않아 가만있으려고 했다. 좋은 취지여도 내가 앞장서면 사람들이 불필요한 오해를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동료 의원들이 '필리핀 출신 이자스민이 하도록 기다리는 중인데 왜 가만있느냐'고 하더라. 결의안 하나 통과시키는 건 실적으로 인정받을 기회라 의원들이 너도나도 내고 싶어 하는데, 나를 배려한 거라고 했다. 그래서 서둘러 법안을 만들어 제출했다. 앞서 국회가 인도네시아 쓰나미, 아이티 지진 때도 인도적 지원을 결정한 전례가 있어서 그 법과 거의 흡사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난리가 났다. 이자스민이 국민 세금 가져다 자기 나라에 퍼 준다고. 결국 지원을 결정하기는 했는데, 양당 대표가 내용을 추가했다. 한국에서 복구를 위해 1년 동안 부대를 파견하는 것과 국회의원 1인에게 10만 원씩 걷어서 지원하자는 내용을 더했다. 부대를 파견하는 건 유례없는 일이었다. 나와 상의해서 결정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다 내가 한 것처럼 되어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1년 후 한 필리핀 네티즌이 고맙다며 웹자보를 만들어 올렸다. 두 손을 맞잡고 밑에 '감사합니다'라고 쓴 건데, 한국 국기가 없다고 또 난리가 났다. '고마운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둥 '역시 이자스민, 그럴 줄 알았다'는 둥 비난의 화살이 다 나에게 쏟아졌다. 필리핀 정부가 공식적으로 만든 것도 아니고, 내가 관여한 일도 아니다. 민간인이 그냥 만들어 올린 것인데도 한국 네티즌의 분노가 활화산처럼 솟아올랐다.

그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내가 만약 서구에서 온 백인이어도 똑같은 대접을 받을까. 국회의원 되기 전 방송할 때는 칭찬을 참 많이 받았다. '필리핀에서 온 스마트한 며느리'라는 설정이었다. 당시 나는 4대가 한 지붕 아래서 살고 있었고, 결혼 이주 여성 1세대다 보니 한국 분위기가 어떤지, 어떻게 변화했는지 어느 정도 경험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사람들이 '지혜롭다', '똑똑하다' 칭찬해 줬다.

여의도 방송국에서 국회로 길만 하나 건넜을 뿐인데, 욕을 엄청나게 먹었다. 심지어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임기도 시작하기 전에 검찰에서 전화가 왔다. 어떤 학생이 블로그에 나를 비방하는 글을 올려서 보다 못한 학교 친구가 검찰에 고발했다는 것이다. 명예훼손은 피해자가 직접 신고해야 하니까 당사자가 계속 진행할지 의사를 물어보더라. 나도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그럴 필요까지 있나 싶어 그냥 왜 그랬는지 이야기나 좀 들어 보겠다고 했다. 그 남학생한테 전화했더니 울면서 그러더라. 자기가 블로그에 글을 아무리 올려도 반응이 없는데, 이자스민 까는 글을 올리면 반응이 너무 좋아서 그랬다고. 관심받는 게 좋고 신이 나서 그랬다며 죄송하다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하더라.

정의당은 지난 6월 29일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 이자스민 위원장(사진 맨 왼쪽)도 참석했다. 사진 출처 정의당 홈페이지
정의당은 지난 6월 29일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 이자스민 위원장(사진 맨 왼쪽)도 참석했다. 사진 출처 정의당 홈페이지

- 국회의원은 사실 권력의 중심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차별받는다고 생각한 적이 많은가.

권력은 고사하고 하도 욕을 먹으니까 좀 위축됐다. 내가 말 한마디 하면 그게 과장·확대되는 경우가 정말 많았다. 앞서 얘기한 필리핀 태풍과 관련해서도 내가 지원하자고 하니까 그렇게 욕을 하더니, 추가 지원을 제안한 당 대표들에게는 아무 말도 없었다.

이 차이가 뭘까 정말 많이 생각했다. 한국 사회에서 이주 여성은 불쌍한, 안타까운 약자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데 그 약자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주류가 되어 권력 그룹에 속해 있으니 기분이 나쁜 거다. '외국인이 뭘 안다고', '알아봐야 우리 역사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이런 식의 댓글이 달린다.

언론도 내가 한마디 하면 클릭 수가 올라가기 때문에 너도나도 나를 인터뷰하려고 했다. 4년 동안 인터뷰한 내용도 거의 비슷하다. 내가 어떤 차별을 당하고 있는지, 최초의 이주 여성 국회의원으로서 느끼는 점 등만 질문한다. 내가 하는 일을 아무리 설명하고 법안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해도, 결국 사람들이 클릭할 것 같은 내용만 기사로 나간다.

그때 달린 기사 댓글 보면 지금도 기가 막힌다. 당시 10대였던 내 자녀들에게 아예 엄마와 관련된 뉴스도, 댓글도 읽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하지 말라고 해서 아이들이 안 볼 수 있는 환경은 아니지 않은가. 아이들에게 신경쓰지 말라고 해도 신경이 안 쓰일 수 없지 않나. 혹시라도 엄마랑 같이 활동하고 싶은 생각 없냐고 물어보면, 애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우리 집에 공인은 한 명이면 충분하다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많이 미안하다.

그런데도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건 그동안 한국에 살면서 충분한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남편, 시댁 식구들, 심지어 동네 사람들에게도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식당에 가면 '이거 입맛에 맞으려나' 하고 없는 반찬도 꺼내 주시는 분들이었다. 뭐라도 하나 더 가르쳐 주고, 더 주시려고 하는 분들을 항상 만났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만나지도 않고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신경 쓰지 않는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나쁜 말을 하기 시작하면 그건 내가 정말 잘못해서 그런 것일 테지만, 악성 댓글 등은 신경 쓰지 않는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런 인격 모독과 비난을 '표현의자유'라고 생각하는 거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차별금지법, 처벌이 목적 아냐
우리 안에 감춰진 차별 드러내고
차별에 대한 인식을 높이면서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로 가게 될 것"

- 정작 이번에 정의당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에는 혐오 표현을 금지하는 내용이 없다.

맞다. 우선 혐오 표현(hate speech)을 규정하는 것부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미국·캐나다 등 타국 사례를 찾아봤다. 표현의자유에 대한 선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그어야 하는지 논쟁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혐오 표현에 대해서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하지만, 상대 권리를 침해하는 일은 세계 여러 나라가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을 통해 제한하고 있다.

이자스민 위원장은 그동안은 차별금지법에 관한 논의의 장조차 없었는데, 21대 국회에서는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는 게 그나마 고무적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이자스민 위원장은 그동안은 차별금지법에 관한 논의의 장조차 없었는데, 21대 국회에서는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는 게 그나마 고무적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서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만 차별인지 몰랐던 행태를 하나씩 짚어 나가자는 것이다. 얼마 전 한 라디오방송에서 행인에게 "대한민국에 인종차별이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 행인은 "인종차별이 어디 있느냐. 차별 같은 거 없다. 흑인은 피부는 까맣지만 마음이 하얗고, 백인은 지혜롭고, 동양인은 근면 성실하다. 이 세 개 다 합치면 좋은 거 아니냐"고 답하더라. 이 발언 자체가 차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거다. 아무도 그걸 가르치지도, 정하지도 않으니까.

차별금지법은 '이게 차별입니다'라고 하나씩 배우고 가르치는 역할을 하게 될 거다. 내가 처음 한국 왔을 때 아이들이 나를 보면 "미국인이다"고 외쳤다. 그래서 미국인 아니라고 하면 "외국인 맞잖아요. 그럼 미국인이지"라고들 했다. 학교에서도 인종차별이 무엇인지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타인을 해치는 말조차 표현의자유에 해당하는 것처럼 주장한다.

한국은 지금도 도를 넘는 발언은 명예훼손죄나 모욕죄로 형사처벌할 수 있다. 그런데도 차별금지법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르다. 형사처벌은 아주 심한 정도일 경우에만 가능하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오해 중 하나가 이 법이 누군가를 처벌하는 취지라는 것인데, 이 법은 차별에 대한 구제 수단으로 민사소송을 제시하고는 있지만 이것 역시 모든 경우를 다 따지고 난 후에야 가능하다.

표현의자유라는 권리도 있지만 차별받지 않을 권리도 있다. 똑같은 권리인데 하나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다른 권리를 배제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둘 다 중요하고 소중한 권리이고 우선순위가 없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돼 집행하는 중에 어느 순간부터 표현의자유를 침해하는 것 같다고 치자. 그러면 그때는 개정을 통해 더 나은 법을 만들면 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회의원이 존재하는 이유 아닌가.

- 차별을 바로잡아 나가는 과정이 불필요한 갈등을 초래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는 주장도 여전하다.

그런 주장이 개별적 차별금지법으로 충분하기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필요 없다는 주장과 맞물린다. 그런데 내 경험만 놓고 봐도 어느 개별적 차별금지법으로 내가 받은 차별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나는 여성이면서 이주민이며 노동자다. 만약 어떤 이주 여성이 사업장에서 인종차별 발언을 들었다고 하자. 이것은 노동에서의 차별 문제일까 아니면 여성 혹은 이주민의 차별에 관한 걸까. 이미 제정된 법들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통해 보완하자는 말이다.

19대 국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차별금지법을 두 번 발의하고 철회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어떤 법안이든 처음에는 거센 반발에 부딪힐 수 있다. 사회적 합의라는 건 광의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금 투표해서 50% 이상 받으면 사회적 합의가 된 건가? 국가인권위원회 설문 조사에서 국민의 88%가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데 찬성한다고 답했다. 기독교계에서도 차별금지법을 찬성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 않나. 느리지만 하나씩 변하고 있다는 증거다. 모든 일에 100% 합의를 이룰 수는 없다. 하지만 이미 자신이 누리고 있는 권리를 더 이상 못 누리게 될까 봐, 누군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권리를 반대하는 건 옳지 않다.

이자스민 위원장은 법조문에 문제가 있으면 국회에서 논의를 통해 조정할 기회가 있다며 이 과정을 통해 사회적 합의에 이르면 좋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자스민 위원장은 법조문에 문제가 있으면 국회에서 논의를 통해 조정할 기회가 있다며 이 과정을 통해 사회적 합의에 이르면 좋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살면서 한 번도 약자의 위치에 있어 보지 않은 사람은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더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차별금지법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과도 관련한 문제다. 우리 수준을 어느 기준까지 올릴 것인가 생각해 봐야 한다. 해외에서 한국인 축구 선수에게 '칭키 아이즈'(째진 눈)라고 하면 난리 나는데, 정작 한국에서 발생하는 인종차별에는 무감각하다. 한국 바깥에서도 '우리'를 챙기는데, 이미 한국 울타리 안에 들어와 있는 200만 명의 '우리'는 '우리'가 아닌가.

한국인과 이주민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국경을 다 막고 아무도 못 나가고 못 들어오게 하지 않는 이상 한국은 점차 다문화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런데 학교나 관공서, 공기업 등에서 다문화 사회에 대한 준비가 여전히 부족하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다문화 아이를 콕 집어 다문화 가정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선생님은 아이를 배려하기 위해서였다고 이야기한다. 다른 아이들과 더 잘 지낼 수 있도록 미리 이야기해 준 것이라고. 나는 그걸 '잘못된 배려'라고 부른다. 의도야 어떻든 아이들은 그 차이를 인식하고 그걸 빌미로 놀리고 왕따시킨다. 미리 말해 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크게 궁금해하지도 신경 쓰지도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차별받고 자란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도 건강한 삶을 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때 발생할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회적 비용이 더 든다. 정말 힘들어하는 여러 약자를 위한 보호막으로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차별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차별에 대한 민감성이 부족하다. 뼈가 부러지면 아플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차별당하면 아플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차별금지법을 발의할 때가 아니고서야 차별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 나눌 기회도 잘 없다. 차별금지법이 차별에 대한 경각심을 깨워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우리 사회에 자리 잡혀 있는 사소한 편견도 발견하게 해 줄 것이다. 무엇이 차별인지 모르는 사람은 배우고, 차별당한 사람에게는 구제 수단을 마련해 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차별금지법은 코로나 시대의 마스크와 같다. 미세 먼지가 많을 때 쓰는 마스크는 오직 나를 위한 거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가 마스크를 쓰는 이유는 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남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말을 뱉기 전에,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이게 혹시 차별은 아닐까' 잠깐이라도 생각하게 해 줄 것이다.

- 정의당 차별금지법안에 보면, 고의적 차별 행위로 인정된 사건에 한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손해배상할 책임을 진다고 나와 있다. 이걸 가지고 과잉 입법이라는 주장도 있다.

예전에 가정폭력특례법도 2·3차 가해가 계속 발생해서 대대적으로 개정하려 한 적 있다. 왜 2·3차 가해가 발생할까? 처벌 조항이 약하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에서 처벌이 나오는 부분은 당연히 시정 명령이 선행된다. 몇 번이나 시정하라고 했는데 계속 듣지 않을 경우에 이행 강제금을 부과해서라도 그 차별을 시정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 부분이 그렇게 문제라면 논의를 통해 수정할 여지도 있다. 첫 발의안이 100% 다 받아들여질 거라고 생각하는 국회의원은 별로 없다. 사회적 합의는 국회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이 법안을 소위원회에 회부하고 공청회를 열거나 각계 의견을 듣는 등 얼마든지 조정할 기회가 있다. 그런데 무조건 이 부분이 잘못됐으니 법을 만들지 말라고 하면, 만들 수 있는 법은 몇 개나 될까.

- 앞으로 차별금지법 제정 과정을 통해 기대하는 게 있다면.

나는 그나마 차별금지법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현실을 긍정적으로 본다. 과거에는 논의하기도 전에 철회해 버리지 않았나. 지금은 철회까지 할 필요는 없으니 철회하지 않는 것이다. 이 법안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나누고 조정하면 된다. 더 많은 국회의원이 참여해 이 부분은 수정하면 좋겠다고 의견을 낼 수도 있다. 모든 법안에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는 것 아닌가. 미리 논의를 통해 최대한의 시행착오를 방지하는 것, 그게 민주주의 사회에서 해야 할 일이다. 우리 사회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 더 성숙해질 것이라고 믿는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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