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가 종교 중독으로 몰락하고 있다. 종교 병리적 증상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그리스도인은 종교 중독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이가 알코올중독 증상을 보임에도 음주에 관용적 문화 때문에 이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한국 사회의 잘못된 인식 문제와 유사하다. 한국교회 종교 중독과 기독교 파시즘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인식론적 기반을 이루는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필요하다.

권위와 권위주의의 차이

한국교회 내 권위주의 문제는 '권위'(authority)와 '권위주의'(authoritarianism)를 동일시하는 잘못된 이해에서 출발한다. 권위란 "어떤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나 위신"을 의미한다.1) 권위는 일상적이다. 미셀 푸코(Michel Foucault)는 인간관계 속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권력을 미시 권력이라고 규정했다.2) 막스 베버(Max Weber)는 권위를 국가 통치의 정당성을 구성하는 기초로 보고 '권위'(Autorität) 유형에 따라 통치 방식을 '전통적 지배'(traditionale Herrschaft), '카리스마적 지배'(charismatische Herrschaft), '합법성에 따른 지배'(Herrschaft kraft Legalität)로 구분했다.3) 권위는 개인적 관계와 사회적 관계의 기반을 이룬다.

권위주의는 "어떤 일을 맹목적으로 권위에 의지해 해결하려고 하는 행동 양식이나 사상"을 의미한다.4) 권위주의는 상위 권위에 맹종하고 하위 권위를 억압해 복종을 강요한다.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 막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파시스트적(혹은 전체주의적) 권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대중심리를 '권위주의적 인격'(authoritarian personality)으로 규정했다.

프롬은 권위주의를 "인간이 그 자신의 개인적 자아 독립을 포기하고 개인적 자아에 결여된 힘을 획득하기 위해 자기 이외의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그 자신을 융화하려는 경향"으로 규정했다. 권위주의적 성격을 가진 이는 자기 자신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자를 위해 행동"하는 성향이 있고, "신‧과거‧자연‧의무" 등 우위에 있는 권력에 의지해 행동력을 획득하기 때문에 전통을 중시하고 권위에 무비판적으로 복종하며 반대자를 배척하고 공격성을 표출한다고 분석했다.5) 촛불 혁명 이후 한국 사회 권위주의는 급격하게 약화하고 있지만 한국교회는 여전히 권위주의로 인한 문제 – 교회 사유화와 세습, 성 인지 감수성 혹은 젠더 감수성 부족, 수직적 위계 구조 등 – 에 시달리고 있다.

성서는 권위를 전면적으로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성서가 말하는 권위는 "지배 서열의 권위"(authority of pecking order)가 아니다. 누군가를 조종하고 지배하기 위한 권위가 아니라 "기능의 권위"(authority of fuction)다. 성서는 지도자에 대한 일방적 복종이 아니라 자기 부인을 통한 상호 종속 관계를 이야기한다.6) 성서는 그리스도인을 향해 교회 권위에 복종하라고 가르치지만(고전 16:16, 히 13:17), 그 권위는 특정 공동체 지도자가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절대적이지도 않다.

성서는 교회 지도자는 다른 사람을 섬기고 유익을 주기 위해 은사를 활용할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라 말한다. 양 무리를 주장하는 자세로 조종하지 말고 본이 되라고 가르친다(벧전 5:3). 교회 공동체 구성원들은 수동적으로 타인에게 - 특히 교회 지도자에게 - 삶을 맡겨서는 안 되며 스스로 깨어 있어야 한다(벧전 5:8). 건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교회 지도자의 권위가 성서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지 분별해야 한다.7)

군국주의적 권위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

권위주의는 반이성‧반근대 경향을 보인다. 그러므로 권위주의적 성격은 근대성 부정에서 출발한 종교 근본주의에 쉽게 매력을 느낀다. 한국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에게서 권위주의가 쉽게 발견되는 이유다. 권위주의와 근본주의는 현실 속에서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종교심리학적 측면에서 근본주의적 종교의식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는 '정통주의 신앙'에 대한 극단적인 욕구인데, 이는 권위주의로 표출된다.8)

한국 기독교 근본주의는 리처드 니버(Richard Niebuhr)가 "강경한 근본주의"(strength fundamentalism)로 묘사한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 영향을 받았다.9) 미국의 강경한 근본주의가 세속화와 자유주의신학에 대한 거부라는 신학적 요인에 기인한다면, 한국의 기독교 근본주의는 한반도 분단과 개발독재, 편집증적 반공주의와 같은 정치적 요인에 기인한다. 한국교회 내 권위주의는 '군국주의적 권위주의'다. 이에 영향을 받은 근본주의를 '권위주의적 기독교 근본주의'로 규정할 수 있다.

기독교 근본주의는 외부 세계 세속화가 가속될수록 더욱 폐쇄성을 보이며 집단에 대한 추종자의 집착도 강해진다. 그러므로 한국 사회 민주화가 진행될수록 권위주의적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더욱 공동체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면서 폐쇄성도 강해진다. 종교 중독의 전형적 특징이다. 오늘날 교회들이 교단을 초월해 유사한 종교 병리적 증상을 보이는 것은 한국교회 내 종교 중독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보여 준다.

교회 세습: 교회 사유화와 지도자 숭배의 결합

종교 중독의 폐해와 관련해 현재 한국교회에서 가장 심각한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는 바로 명성교회 사태와 같은 교회 세습이다. 사랑의교회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교회 사유화는 많은 종교 병리적 문제를 발생시킨다. 교회 세습은 교회 사유화와 지도자 숭배가 결합된 문제이다. 교회 세습이란 특정한 교회 담임목사나 교회 유관 기관 혹은 패러 처치(parachurch) 대표가 자신의 담임목사직이나 대표직을 혈연관계에 있는 이에게 대물림해 주는 것을 뜻한다. 세습은 교회가 지도자의 재산이 되었다는 의미이며,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일이다. 교회 지도자가 교회 주인이 되는 교회 세습은 일종의 지도자 숭배 현상이다.

세습 문제가 있는 교회들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권위주의적 기독교 근본주의를 신봉하는 담임목사들이 카리스마적 권위를 내세워 급속한 성장을 이루어 냈고, 코로나19 사태와 21대 총선을 거치며 유사한 종교 중독 현상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베버에 따르면, 카리스마적 권위는 비일상적인 사건을 실현할 수 있는 개인의 초월적인 힘을 발휘한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지도자의 권위는 "은총의 선물", 즉 카리스마(Charisma)로 인한 것이다.10) 카리스마적 권위는 종교 영역에서 더욱 강력한 영향을 미치며, 종교 병리적 현상을 보이는 집단을 지도자 숭배로 이끈다.

주물 숭배로서 지도자 숭배와 권력 중독

카리스마적 권위를 표출하는 교회 지도자는 심리적 문제를 지닌 그리스도인을 종교 중독으로 이끈다. 외상 사건(traumatic event)을 경험한 사람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현실을 부정하거나 왜곡하고, 의도적으로 다른 것에 몰두하려는 욕구를 가진다. 이때 현실 문제를 마술적이고 신비한 방식 - 열광적 기도와 강박적인 예배 참여 등 - 으로 해결하려는 욕구는 종교에 대한 강박적 집착을 낳는다. 카리스마적 권위에 의존하는 교회 지도자는 외상 사건을 경험한 사람에게 종교적 환상을 심어 주어 집착을 강화한다. 샤를 드 브로스(Charles de Brosses)가 정립한 '주물 숭배'(fetishism) 현상이 발생한다.

주물(혹은 물신)이란 그 자체로 힘을 갖고 있다고 믿는 대상이나 관습 혹은 비합리적인 헌신을 바치는 대상이나 관습을 의미한다.11) 주물, 즉 '페티시'(fétiche)를 숭배 대상으로 하는 원초적 신앙은 눈에 보이는 대상이나 관습을 통해 길흉화복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투사된 것이다. 중세의 성물 숭배뿐 아니라 가톨릭의 7성사聖事, 개신교의 헌금, 교회 봉사, 주일예배 등 반복되는 특정 종교 행위에 대한 집착으로도 표현된다.

과거와 달리 현대사회에서 주물 숭배는 종교 중독의 주요한 증상이다. 종교 행위에서 종교 지도자로 집착 대상이 옮겨가는 종교 중독의 특징 때문에 주물 숭배는 지도자 숭배로 이어진다. 하나님을 대신해 눈에 보이는 대상에게 축복을 기대하는 우상 숭배다. 한국교회 내 널리 퍼져 있는 '담임목사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는 왜곡된 신앙은 종교 병리적 문제를 심화하고 교회 세습의 지도자 숭배적 요소를 외면하게 한다.

종교 중독 증상인 지도자 숭배는 담임목사의 권력 중독이라는 폐해를 낳는다. 종교 중독 증상을 보이는 교회 성도들이 많아질수록 담임목사의 권력 중독은 깊어진다. 종교 중독자에 대한 완전한 통제와 가학적 공격성의 표출은 종교 지도자의 약점을 가려 주고, 고통을 멈추게 하고, 지배감을 느끼게 하여 기분 전환의 체험을 선사하기 때문이다.12)

종교 지도자가 과거의 실패나 약점을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가 강할수록 권력 중독에 빠지기 쉽다. 종교 중독 증상을 보이는 교회 담임목사는 더 큰 영향력과 통제력을 얻기 위해 권력에 더욱 집착한다.13) 결국 교회는 담임목사의 소유물이자 그의 권위와 영향력을 과시하는 장으로 전락한다. 교회 세습은 권력 중독에 빠진 담임목사가 은퇴 후에도 자신의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과시할 수 있도록 사유물(교회)을 대신 관리할 사람을 세우는 행위이며 권력 중독의 또 다른 현상이다.

정치적 종교로서 파시즘과 파시스트 독재자 숭배

종교 중독의 부정적 영향력은 기독교 파시즘 속에서도 거의 동일하게 발생한다. 이는 파시즘이 일종의 '정치적 종교'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종교란 문화적·정치적 지지를 받아 국교에 필적하는 권력을 획득한 정치 이데올로기를 통칭하는 말이다. 정치적 종교로 인정받는 정치 이데올로기는 정치 운동의 특징과 종교운동의 특징을 동시에 포함한다.14)

종교 중독 증상을 보이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는 권위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을 통해 정서적·심리적 안정감을 얻기 때문에 더욱 강력한 군국주의적 권위주의이자 종교적 요소가 포함된 '파시즘'(Fascism)에 쉽게 매력을 느낀다. 전광훈과 같은 권위주의적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사회·정치 운동이 쉽게 기독교 파시즘으로 변질되는 이유다.

군국주의적 권위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파시즘은 개인주의를 반대하며 권위에 대한 충성에 높은 가치를 둔다. 파시즘은 국가‧민족 등 집단 전체를 신성시해 개인보다 우위에 두는 경향이 있다. 이탈리아에서 초기 파시즘은 "기존 보수주의와 좌파에 대한 적대감과 함께 극단적 민족주의와 연결돼" 있던 정치 운동에서 출발했지만,15) "국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따라서 개인의 삶을 용인하는 것도 개인의 이익이 국가와 일치하는 경우에 한정"했고 "국가의 권리는 개인의 참된 본질에 대한 표현임을 재천명"했다.16)

파시즘은 신성화된 국가‧민족을 상징하는 카리스마적 지도자에게 완전히 복종할 것을 요구하며 일인 독재 체제를 지향했다. 20세기에 등장한 '고전적인 전체주의'(classical totalitarianism) - 이탈리아의 파시즘, 구 소련의 스탈린주의, 독일의 나치즘, 스페인의 프랑코주의, 일본의 군국주의 등 - 는 강력한 일인 독재 체제를 지향했다. 독재자 남성성은 절대화되었다.17) 서구에서 파시즘은 기독교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기독교 파시즘(Christofascism)으로 변질됐고 독재자 권력은 신성화됐다.

독재자 숭배 현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등장한 '네오파시즘'(Neo-Fascism)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최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으로 촉발된 대규모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 연방군 투입을 공언한 후 인근 교회에서 성경을 들고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이 사건은 미국 사회가 강경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과 네오-파시즘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1) "권위," 『21세기 정치학 대사전』;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726570&cid=42140&categoryId=42140> (2020년 6월 4일 검색)
2) 미셀 푸코/오생근 옮김,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 (서울: 나남, 2018), 57.
3) Max Weber, "Politik als Beruf," in Gesammelte politische Schriften, 5th ed. (Tübingen: J. C. B. Mohr, 1988), 507.
4) "권위주의," 『21세기 정치학대사전』;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726571&cid=42140&categoryId=42140> (2020년 6월 4일 검색)
5) Erich Fromm, Escape from Freedom (New York: Owl Book, 1994), 140, 170-171.
6) 리처드 포스터/권달천, 황을호 옮김, 『영적 훈련과 성장』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5), 168-174, 184.
7) 그랜트 마틴/임금선 옮김, 『좋은 것도 중독이 될 수 있다』 (서울: 생명의말씀사, 1994), 218.
8) 메리 조 메도우, 리차드 D. 카호/ 최준식 옮김, 『종교심리학 하』 (서울: 민족사, 1994), 346.
9) H. Richard Niebuhr, "Fundamentalism," Encyclopedia of Social Sciences, vol VI (New York: Macmillan Publishers, 1937), 527.
10) Weber, "Politik als Beruf," 507.
11) 아치볼트 하트, 『숨겨진 중독』 (서울: 참미디어, 1997), 156.
12) 마틴, 『좋은 것도 중독이 될 수 있다』, 174.
13) 앞의 책, 175-176.
14) Eric Voegelin, "The Political Religions," in Modernity without Restraint, The Collected Works of Eric Voegelin, vol. 5 (Columbia & London: Univereity of Missouri Press, 2000), 27.
15) Kevin Passmore, Fascism. A Very Short Introduct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4), 10.
16) 데이비슨 뢰어/정연복 옮김, 『아메리카, 파시즘 그리고 하느님』 (서울: 샨티, 2007), 146.
17) 앙리 미셀/유기성 옮김, 『세계의 파시즘』 (서울: 도서출판 청사, 1979),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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