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르스 질병이 급속도로 확산되어 고통받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 와중에 일부 보수 개신교인이 '메르스는 하나님의 경고'라고 주장했다. (페이스북 갈무리)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감염자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6월 2일 자정을 기준으로,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만 30명이고 격리 대상자는 1,300명을 넘어섰다. 사망자까지 나오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공포감마저 조성되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일부 개신교인은, '메르스는 하나님의 경고'라는 이야기를 인터넷과 SNS에 풀어 놓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이전에도 있었다. 사스나 신종 인플루엔자가 발병했을 때도 '하나님이 우리가 저지른 죄 때문에 이런 무서운 질병을 내렸다. 회개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보수 기독인들 사이에서 퍼지기도 했다.

'메르스가 하나님의 경고'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그 이유를 퀴어 문화 축제와 정부가 추진 중인 이슬람 할랄 사업에서 찾았다. 퀴어 축제를 막지 않거나 할랄 사업을 빨리 접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로 희생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페이스북을 통해 주장했다.

먼저 퀴어 축제를 경고하는 글을 올린 이 아무개 씨는 "메르스 발생 소식을 듣는 순간 성경 말씀이 불현듯 보였다"고 했다. 사무엘하 24장에서 다윗 왕이 인구조사를 했다가 하나님이 내린 전염병으로 7만 명이 죽었다는 내용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여자와 아이들까지 포함하면 수십만 명이 죽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씨는 "만약 퀴어 축제가 열린다면 대한민국 전역에 수십만에서 수백만 명이 메르스에 감염될 것이다. 하나님은 단 한 사람이 저지른 죄악으로 인해 하나의 국가를 치신다. 퀴어 축제 예정일까지 10여 일 남았는데 이를 막지 못하면 하나님은 진노하신다. 6·25전쟁 이후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이슬람 국가와 체결한 할랄 사업 때문에 메르스가 발병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교회개혁실천연대와 성서한국 등을 '종북 간첩 세력'이라고 주장하는 동영상을 유포했다가 5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던 박 아무개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한민국이 이슬람과 자꾸 할랄 사업권 체결 같은 저주받을 짓 하니까 메르스 같은 걸로 (하나님이) 경고하는 것 아니냐. 빨리 할랄 사업 같은 거 접자"고 했다.

정재영 교수(실천신대)는, '메르스가 하나님의 저주'라고 주장하는 것을 일부 보수 개신교인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행동이라고 보았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이 같은 주장에 몇몇 누리꾼들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유황불 심판을 안 받으려면 (퀴어 축제를) 막아야죠", "다윗 왕의 음란죄, 살인죄로 7만 명이 죽었으니 속히 회개하여 죄에서 돌이키고 이들의 행진을 막아야 합니다", "만일 메르스가 퍼지려고 하는 시점에 동성애 축제를 하면 메르스는 걷잡을 수 없이 퍼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이슬람과 동성애 그리고 메르스는 같이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고 동조했다.

'메르스가 하나님의 경고'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감염자들 앞에서 그런 소리해 봐요…이게 무슨 신의 뜻이야", "할랄 사업권 체결이 저주받을 짓이라고요? 마치 동성애자가 당신 교회 오면 쫓아낼 기세네요. 죄를 미워해야지 죄인을 미워하면 됩니까? 당신도 똑같은 죄인이고 천사도 죄인을 꾸짖지 못하는데 박OO 씨는 어떠한 권리로 그러세요?", "적당히 좀 하십시오. 메르스 걸리는 사람들은 희대의 죄인들입니까? 그들은 우리보다 뭐가 못해서 메르스 걸려서 고생이죠? 이런 식의 신정론은 세월호 때 이미 끝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메르스가 하나님의 경고'라는 주장에 대해 정재영 교수(실천신대)는, 근본주의적 신앙을 가진 이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에서 무리한 주장을 하는 것으로 봤다. 일부 개신교인들이 이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이유는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 교수는 "한국인들의 관념에는 '인과응보'적인 개념이 자리 잡고 있는데, 아직 신앙적으로 미숙한 기독인들이 이런 관점에서 반응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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